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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 실행되어야 하는 이유

기획

by Woolf 2021. 3. 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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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2030년대에 아시아의 시대가 온다는 예상을 누구든지 한 번 정도라도 해 보았을 것이다. 19세기에 국제적 패권을 쥔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이었고 20세기에 그러하였던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과 지금의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소련이었던 것처럼, 현재 우리가 살아갈 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시기인 21세기에는 중국과 인도 등의 국가들이 미국을 제칠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하지 않았는가? 더 빨리 다가올 이것을 무시할 수가 없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시아는 다양한 지역으로 나뉘고, 단순히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특정 국가만이 전부라고 볼 수 없다. 특히 동아시아(여기서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동북아시아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도 포함한다)의 시민들이 이 시대를 어느 한 국가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적인 방향으로 걸어가게 하려면, 이 지역에도 국경을 초월한 학문적 교류가 필요함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연구실에서 함께 자료를 조사하는

유럽의 남학생들

 

  학생들이 원하는 주제를 여러 지역의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연구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를까? 바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다. 이것의 명칭은 16세기 네덜란드의 인문학자로 당시 종교의 실상에 대해 풍자한 소설로 알려진 우신예찬의 작가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었다. 에라스무스는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꽃이 활발히 피어나기 시작한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자신의 본국인 네덜란드에 국한하지 않고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유럽의 다양한 국가들을 왕래하며 학문을 유연하고 폭넓게 갈고 닦았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보편주의는 4세기 후에 대학들 사이에 빛을 발휘하게 된다. 1987년 유럽 연합회의 제안으로 이 프로그램이 탄생하였는데, 유럽 연합에 소속된 국가들(당시에는 영국도 여기에 해당되었으나, 최근에는 브렉시트로 탈퇴한 상태이다)의 학생들이 국경을 오고가며 유럽의 여러 대학교에서 국제적인 학식을 쌓도록 장려해왔다. 최근에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에라스무스+ 프로그램도 실행되었다.

 

  그런 프로그램이 앞으로는 동아시아에서도 필요하다. 왜 실행되어야 하는지 다음의 세 가지의 이유를 들어가면서 풀어내도록 하겠다. 첫째, ‘아시아의 시대가 오는 데 준비된 인재들이 등장하게 하는 무대를 마련한다. 앞으로 빠르게 다가온다는 10년 뒤에는 세계의 축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20세기까지는 대서양이 우세였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영국의 런던, 맨체스터, 프랑스의 파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미국의 뉴욕, 보스턴 등의 도시들이 성장하고 예술, 음식, 사상 등과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기초학문이 발달하였다. 그런데 이제 막 1/4이나 넘어가기 시작한 21세기에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세계의 무대가 연출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태평양과 직접적으로 가까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폭넓고 깊이 있는 수준의 교양과 각 사람마다 다른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학생들이 접하게 될 문화는 다양하다는 것을 인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문화 속에만 살아가도 별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이다. 과거에나 지금에나 우리는 다른 국가들의 문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오고 있으며, 직접 해외로 가지 않더라도 책이나 미디어 등을 통해 등장하는 낯선 문화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들을 얻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타문화들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또한 한국은 해외 수출을 통해야만 국제적인 이득을 얻을 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나와 다른 모습에 대한 이해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래서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함께 학습하고 공부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상대적으로 이해하고,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방향의 세계 시민 교육이 동아시아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상황에 따라서는 주로 외향적인 성격과 내향적인 성격 모두가 즐기는 소그룹 형태로 진행되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셋째, 다양한 담론을 통해 나라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배우게 된다.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반전주의, 세계주의 등이 사회적 소수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실행되어야 할 동아시아 버전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서 각 국가들의 학생들은 어떠한 능력을 발휘하게 될까?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일곱 지역을 예로 풀어나도록 하겠다.

 

  우선 한국의 학생들은 1) 세계 언어학자들도 인정하고 연구하는 문자인 한글을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IT에서도 빠른 타이핑으로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각기 한자나 가나를 입력하기 위해 라틴어로 한 번 타이핑을 하고 그것을 변환해야 한다는 점과 비교된다. 2) 그리고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수학(數學)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대학교 및 대학원 과정에 들어서야 공부해야 할 것 같은 이차함수, 삼각함수, 미적분 등을 한국에서는 그 이전 과정인 고등학교에서 배운다고 한다. 3) 또한 영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독일어 등의 외국어 의사소통 중 읽기와 쓰기 능력도 대단하다. 우리는 그 언어들을 외국어로 학습하다 보니 주로 독해와 작문 연습, 어휘 및 어법 강화하기를 통해 학생들이 몰랐던 세계를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은 미디어 문화도 크게 발달해서 회화 연습, 발음 훈련에도 금방 익숙해진다.

 

  중국의 학생들은 1) 동아시아 언어들의 대부분인 한자와 한문의 중심을 잡아온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한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동아시아에서의 학문 교류를 위해 사용되어 온 이것들은 한국어의 70% 어휘와 일본어의 단어 표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 그리고 해외에서 들어온 브랜드의 이름(코카콜라, 포카리스웨트 등)을 비롯한 외래어들을 자신들의 표현으로 바꿀 줄도 안다. 3) 영어 등의 외국어를 소리 내어 따라하면서 열정적이고 자신감 있게 연습한다. 4) 시험을 통해 자신들이 배운 것을 점검하는 유구한 문화를 발달시켜왔다.

 

  일본의 학생들은 1) 일찍이 발달된 번역 문화 속에서 전문적인 이론이나 지식들을 모국어로 접하는 데 익숙하다. 전문 기관에서 번역된 해외의 고전이나 최선 연구 자료들을 폭넓게 접하면서 시민으로서 학습해야 할 교양 및 전공 지식을 수월하게 누리게 된다. 2) 수도인 도쿄 뿐 아니라 오사카, 나가사키, 야마나시 등의 지방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소재도 얻게 된다. 이것을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줄도 아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야마나시 현의 여러 명소에서 캠핑을 하는 여고생 5인방의 이야기인 유루캠이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학생들은 1) 비원어민인 외국인 사이의 소통으로 더 중요해진 영어를 제2언어이자 공용어로 접하며 그것을 이용한 소통에 능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2) 그중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는 화교들이 많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국어 소통 능력에서도 능숙하다. 3)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서양에서 발달한 종교 및 신앙과 조화가 이루어진 다문화 사회의 혜택을 받아왔다.

 

  홍콩의 학생들은 1) 영어와 중국어와 같은 외국어로 소통하는 데 뛰어나다. 홍콩은 19-20세기에 영국의 식민지로 영국의 문화가 오랫동안 정착되었고, 1998년에 반환되기 시작해서 2010년대 말 우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의 일국양제 시스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2) 홍콩대학교를 필두로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 연구와 학습 기회를 많이 누려왔다.

 

  앞으로의 시대의 무대가 주로 아시아라고 예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화될 순간이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예상의 주인공으로서 중국 하나만 거론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오히려 그 중국도 같은 문화권의 다른 국가들(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 등)과 같이 손잡고,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양보하면서 윈윈을 이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길은 동아시아의 여러 학생들이 대학교 및 대학원 과정에서, 혹은 그 이전부터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기초학문과 교양을 함께 갈고 닦으면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국제 관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동아시아 버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학생들이 여러 진로로 나아가 서로 다양한 방법으로 연대함을 실천으로 옮기는 삶도 살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 여담: 사실 이 주제에 관해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청원으로 유명한 박상익 교수가 2019년에 먼저 논한 바 있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 관한 간략한 내용은 이 분의 글에서 참고하였다. 이 기사에서는 2009년 10월 베이징 ·· 3국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히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이 프로그램을 제안하였고, 2011년 10월 도쿄의 도쿄대학교에서 제12회 베세토하(BESETOHA. 베이징, 서울, 도쿄, 하노이) 총장포럼’에서 공동학위제가 추진되기도 했다는 사실도 거론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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