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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은 눈으로만 읽는다고 해서 감상한 걸까 - (3) 피그말리온 속 배경지식 탐구하기

배경지식

by Woolf 2021. 4. 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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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의: 필자가 2~3회에 걸쳐 작성하는 이 글들의 마지막 소재는 학부 영문학 희곡 수업에서 다루어질 때에만 눈여겨 본 것임으로 양해를 구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해당 작품을 완독하고 오디오북도 듣고 영화도 보려고 하겠습니다.

 

   3)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

   먼저 그리스-로마 신화의 피그말리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여성의 모습을 조각한다. 그리고 그 조각상이 진짜 사람이 되어 자신이 그것과 결혼하다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어 날마다 돌보고 보호한다. 그 애정에 감동한 아프로디테에 의해 조각상이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으로 변하자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와 결혼한다. 이 신화는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으면 진심과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232 작가의 네이버 웹툰 연애혁명』의 남성 주인공 공주영이 여성 주인공 왕자림에게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니까 왕자림도 공주영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스토리도 여기서 힌트를 얻은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웹툰이 나오기 약 100년 전에 『피그말리온이라는 희곡을 쓴 조지 버나드 쇼는 피그말리온의 이미지를 히긴스 교수에게, 갈라테이아의 이미지를 일라이자에게 부여하였다.

 

   다음으로 피커링 대령이 인도에서 복무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소공녀 편에서 다루었듯이, 피커링 대령이 활동하던 시기는 바로 대영제국이 19-20세기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캐나다, 오세아니아를 집어 삼키던 제국주의 시대이다. 이 영국이 러·일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을 맺은 일본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 작품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겠지만, 일본 출신의 능력 있는 장군이 한국의 동양척식주식회사 같은 곳에서 일하였다고 생각하면 작품에 대한 감동이 다 사라지지는 않을까?

 

  그리고 일라이자의 말투와 일자리의 수준의 상관관계가 어떠했는가에 관한 당시 19-20세기 영국 사회와 계층마다 달랐던 언어생활에 관한 탐구도 필요하다. 일라이자는 가난한 하층민 출신으로 우리나라의 국어에 해당되는 영어를 사투리 수준으로만 쓰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수준에서 벗어나려면 말투를 세련되게 고쳐야 한다. 반면 히긴스 교수는 중산층인 신사(gentleman)로 음성학으로 일생의 연구를 할 정도로 여유로우며, 고급스럽고 정돈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꽃 가게를 창업할 정도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일라이자는 모국어인 영어로 사고해야 하는 음성학에 뛰어난 히긴스에게 발음 교정을 지도받는다.

 

   또한 히긴스 교수가 일라이자 면전에서 언급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존 밀턴의 문학사적 가치에 관해서도 짚을 줄 알아야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영국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국가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제목을 들어보았을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대문호이다. 그가 지금도 많은 세계의 시민들이 학습하는 현대 영어의 어휘들을 더 풍성하게 하였다고 한다. 한편, 존 밀턴은 박상익 교수와 같이 우리나라도 사회 전반적인 방향으로 번역 문화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에 의해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영국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갈 때 로마 가톨릭과는 완전히 다른, 종교에 대한 자유를 외치며 실낙원과 같은 작품들을 그의 모국어로 써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에 일라이자와 같은 하층민들은 빈부 격차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보니 이러한 작가들의 명작을 읽어나갈 여유는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위에서 언급된 피그말리온 신화에서의 갈라테이아는 조각상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인물이다. 다만 이 신화는 그녀의 시점을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갈라테이아와 달리 일라이자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가를 다양한 말투로 대놓고 표현한다. 일라이자는 히긴스 교수로부터 혹독한 발음 교정 훈련을 받은 후 여러 귀빈들과 인사들에게 ‘예의 바른’ 말투로 담소를 나누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여러 사람을 만난 뒤, 일라이자는 자신이 히긴스 교수에 의해 실험 대상자’(교육에 대한 코치를 받는 자’가 아니다!)로 이용되고 슬리퍼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졌음을 깨닫는다. 여러 번의 말다툼 끝에 그녀는 나이 든 그의 곁을 떠나고 젊은 프레디와 결혼하기를 선택한다. 이것을 통해 조지 버나드 쇼는 당시 여유가 없던 서민들과 하층민 여성들도 일라이자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길 얼마나 바랐을까? 어쩌면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주목해야 할 대상도 이런 사람들처럼 사회 속에서 몇 배로 노력했는데도 그 수고를 아웃풋(output)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아닐까? 여담으로, 현 20대(필자 포함)의 조부모님과 부모님 세대는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뮤지컬 영화로 이 작품을 간접적으로 접하셨을 것인데, 일라이자와 히긴스 교수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결말로 익숙하실 것이다. 그 분들이 그들의 결별로 끝나는 원작 희곡을 꼼꼼하게 읽으신다면 얼마나 놀라실까?

 

 

 

  우리가 영어로 된 글을 읽는다는 것은 학창 시절에 수능 영어나 토익 등에서 어휘를 외우고 문법을 맞추고, 독해 지문에 적힌 문자만 해석하는 선에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텍스트를 통하여 다양한 역사나 문화에 관해 유추해 보고, 지금의 우리가 그대로 따르기 힘든 것들에 관해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문학도 그냥 줄거리만 따라가며 읽기보다는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과 주제를 생각하며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인문학에 속한다. 작품 하나를 읽더라도 영어 원문이든 한국어 번역문이든 독해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한 문장에라도 숨겨진, 각자가 다르게 보게 될 주제를 관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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